16. 할머니

유독 창가에서 심한 바람이 불어오던 그 날 저녁, 부모님께선 동생과 나를 두고 할머니가 계신 병실로 가버리셨다. 3일전 병실에서 보았던 할머니. 약기운에 취해 누가 누군지 제대로 분간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게 너무 힘들었다. 부모님이 병실로 떠난 후,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아서 동생과 노닥거리다가 음악을 듣다가 책을 보다가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부리나케 잠을 깨우는 소리에 억지로 억지로 눈을 떴다.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하고 바쁘게 가벼운 짐을 챙기는 부모님. 눈이 번쩍 뜨였다. 묵묵히 얼굴을 씻고 옷을 차려입었다. 여전히 잠에서 꺠어나지 못하는 동생을 챙기고 찬바람을 맞아가며 자동차 시트에 몸을 실었다. 차가운 공기, 간헐적으로 들리는 부모님의 대화, 밀려오는 가벼운 두통에 눈을 꽉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이미 부모님은 차에서 내려 그 음습한 병원 안으로 들어가셨다. 눈을 뜨고 다시 또 감고. 떠오르는 생각을 굴리고 또 굴리다 머리가 아파지면 놓아버리기를 수차례, 차로 돌아온 아버지는 말없이 다시금 운전을 계속했고 나 역시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낯선 도로. 지평선 멀리까지 향한 도로. 온통 논밭으로 가득한 그 곳. 그리고 멀리서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건물. 아마도 이 곳이 목적지인듯 했다. 낯선 건물의 1층. 새하얀 백지 위에 딱 한군데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의 이름을 찾았다. 그 낯설고 답답한 곳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할머니와의 5일 밤낮. 이제는 다 잊어가지만 그래도 역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었다.

염습. 시신을 염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이틀을 꼬박 밤을 새워 모든 사람이 피로에 찌들어있던 그 날 아침, 시신을 입관한다는 말에 다함께 내려가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힘없이 축 늘어진 팔과 다리, 살가죽. 정성스럽게 시신을 닦아내고 삼베옷을 입히는 도중 얼굴에 덮여진 천을 치울때, 모두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한순간에 그곳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울지 말아달라고 문앞에 붙여놓긴 했지만 다들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이 드는지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나는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그 광경을 똑똑히 바라보며 머리에 새겨놓았다. 그렇게 할머니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놓았다. 그리고 먼저 출발한 영구차. 할머니와 유독 살갑게 지냈던 삼촌, 이제는 작은아버지. 슬픔을 잊기 위해 그렇게 폭음을 하고도 멀쩡한 정신으로 손님을 맞이했지만 역시 운전은 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삼촌의 차에 쌍둥이 사촌동생들과 삼촌을 태우고서 영구차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왜 그랬을까. 그곳에서 우리 선산까지 가는 길에는 정말로 지독하게 안개가 끼었다. 10여대 이상의 자동차가 비상등을 켜고 줄지어 도로를 달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 선산에 가기 전 먼저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집에 들러 할머니가 쓰시던 모든 물품을 모조리 꺼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나오는 그 모습. 찬바람에 꾹 눌러두었던 눈물이 찔끔 나왔다.

요즘 몸도 마음도 부쩍 커버린 동생이 상여 맨 앞에서 할머니의 영정을 들게 되었다. 동생은 참 의젓하게도 산을 올랐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묻히신지 근 이십년. 이제야 겨우 할머니는 그 옆에 누울 수 있었다. 이런 호상은 좀처럼 드물다며 웃으며 보내드리라는 친척의 친구분들의 말에 다들 그래도 웃으며 마무리를 했다. 단단하게 무덤을 꾸욱 눌러밟았다. 무덤가에서 내려보는 풍경은 언제나처럼 탁 트였다.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마을의 모습. 그만 산을 내려가자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그렇게 계속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할머니가 가신지도 한달이 조금 덜 되었다. 그때부터 글로나마 할머니를 조금 더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잘 써보려고 노력했었는데, 역시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힘들었던 5일장도 이제는 희미하게 기억날 뿐. 그래도 다행인건 아파하던 할머니의 모습보다는 그냥 편안한 표정으로 걸터앉아 있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는 것. 그 때는 눈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었는데.

by 도서관 | 2008/01/09 22:36 | 『49제. 그리고』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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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얼큰이 at 2008/01/10 00:37
원래 돌아가신 분의 행복했던 모습만을 기억하려고 하는게 사람의 본성.... 아닐까요? 괴로운 모습 떠올려서 좋을거 없잖습니까.
Commented by 률군 at 2008/01/10 13:12
사람은 워낙 단순해서 있을때는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없어지고나서야 그리워하고 기억하려 하고 ..
Commented by 눈물겹다 at 2008/01/10 14:03
힘드신 일이 있었군요.......좋은곳으로 가셨을거예요.
Commented by 아모이 at 2008/01/10 14:40
좋은 기억이어서 다행이에요.
Commented by 도서관 at 2008/01/10 19:15
얼큰이 // 그렇지요. 그리고 좋은 모습만 기억이 난답니다. :)

률군 // 차라리 단순한게 낫다고 봅니다. 복잡하면 고민만 늘어요~!

눈물겹다 // 힘들지만 지나고 나니 또 금새 괜찮아지더라구요. :) 감사해요.

아모이 // 네에. 좋은 기억만 한가득 안고 살아도 모자라지요.
Commented at 2008/01/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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